조금 일찍 나선 출근길이다. 한창 확장공사 중인 도로를 지나 넓게 펼쳐진 자동차 전용도로
에 오른다. 연휴가 실감난다. 마음 먹고 밟으면 140km까지 밟아내는 도로가 어지간한 곡예
운전을 불허한다. 조금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고속도로의 극심한 정체보다는
훨씬 수월하다는 위안을 갖자마자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 두고 있다.
점점 나아가는 속도가 가다 서다로 바뀐다. 걷는 속도보다는 조금 빠르게 조금씩 따라가다 보니
고급 승용차와 보기에도 튼튼해 보이는 suv가 충돌의 흔적을 남기고 견인차에 묵이고 있다.
고향 5분 빨리가려다 최소한 5시간은 늦어진거다. 왠지 고소한 생각이 든다. 차 덩치에 맞게
사람은 다치진 않아 보인다. 다행이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정해진 시간을 손해 보는 사람들은 내가 느끼는
생각보다 어쩌면 더 심한 욕설을 내 뱉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고 지점을 지나니 다시 소통이 원활하다. 표지판이 톨게이트가 가까이 왔다고 알려 주자
다시 서행이다. 톨게이트로 진입하는, 그 곳에서 빠져나오는 차량들이 엉킨다.
하필이면 내 앞에서 신호는 바뀌고 빤히 내려다보며 지나가면 고지서를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부리는 듯 빤히 보는 녀석의 시선이 겁이 나 다시 멈춘다.
창을 내리고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왼팔을 창틀에 걸쳐둔다. 음악은 여전히 흘러 나온다.
딮 퍼플. child in time
신작로 길에 깔아놓은 자갈돌 위를 각종 보따리 꾸러미들을 짊어지고 매고 두른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버스. 차가 멈출 때마다 커다란 헝겊주머니를 짤랑거리며 힘차게 그 문을 여닫곤 했던
청년이 스친다. 분홍색 보따리에 쌓인 채 노란 눈을 깜빡이며 늘어진 벼슬을 흔들거리던 장닭이
날 노려 보았다. 다리 사이에 지팡이를 끼우시고 졸고 계신 할아버지는 무슨 꿈을 꾸고 계신 건지.
시내 장에 가져간 물건을 죄다 팔았는지 깨끗이 비운 빨간 대야를 뒤집어 놓고 그 위에 걸쳐 않아 계신
할머니의 점박이 몸빼 바지 밑으론 자주색 꽃무늬 버선이 보이고 시내를 벗어나기 전 정거장에서
내린 아주머니의 자리를 잽싸게 맡아 자리 한 엄마의 무릎에 난 앉아 있다.
버스가 지나면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곤 했다. 그 뒤를 떼 지어 쫓아가며 손을 흔들어대던
어린 시절. 언젠가 커다란 버스바퀴가 튕겨낸 자갈돌에 정강이를 얻어맞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와 시를 연결하는 버스는 빨간색이었다. 의자도 두명이 앉을 수 있었다.
시골과 시를 연결하는 버스는 파란색.
의자는 혼자만 않을 수 있었다. 몇 해 지나 학교를 다니면서
깡촌에서 시내 변두리로 이사 온 이후론 시내 버스의 의자에 앉아서 간다는 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버스 천장에 붙어있는 고리에는 손이 두 개 세 개씩 매달려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사람에 가려 도대체 어디쯤 왔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으면 마음 속에선 벌써 내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버리진 않았나 싶은 공포심이 밀려 오기도 했다.
지나친 두 정거장을 걷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뒤차에서 경적소리를 울리는데 보니 어느새 파란 불로 바뀌었다.
급하게 엑셀레이터에 발은 얹고 출발하는데 몇 초가 흘렀는지. 멍하니 보내버린 몇 초 때문에
다음 신호까지 5분여를 기다려야 하는 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든다.
귀가 갑자기 가려운 듯. 아마 저주를 퍼부어 대고 있을 듯. 나도 그러는 걸 멀.
언제나 남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나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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