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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

떠난 친구들을 그리며(희에게)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글로만 만나는 친구가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곁에 머무는 사람들. 모두 이해타산에 얽혀 있는 인간관계이다. 하나를 주면 하나 혹은 그 이상을 가져와야 한다. 남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에게서 아무것도 가져 갈 것이 없다는 것이 들통나면 더 이상 그는 내 곁에 머물지 않게 되리라.

 

무언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고 그로 하여금 믿게 만들어야 한다.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 와 아첨을 떨며 굽신거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건 치열하게 전개되는 부와 명예의 쟁탈전 한 복판에 서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도덕은 법 앞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냉정하지만 현실이다. 그 누가 있어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양보할 것인가. 모두가 편하자고 정해 놓은 공동체의 최소한의 윤리는 어쩌면 처음부터 불공평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부가 세습되는 것처럼 가난 역시 세습되고 있다. 한 달 동안의 고단한 노동을 제공하면 댓가가 손에 잡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빈번하게도 그 이상이 도로 빠져나가고 만다.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불안한 까닭이다. 내일의 희망을 품어보기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담장 앞에 홀로 서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똑같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이가 있다. 그가 바라보는 담장은 과연 무엇일까. 사뭇 궁금해진다. 똑같은 담장 앞에서 저 건너편을 보고 싶어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막연히 더 나은 삶이 놓여 있을 거란 기대를 채우기 위해 그의 어깨를 빌려 담장 너머에 간신히 목을 올려놓고 바라보며 그 멋진 광경에 감탄한 다음 내려와 그 모습을 전하면 이제 그에게 내 어깨를 빌려 줄 차례이다. 기꺼이 내어 준 어깨가 갑자기 가벼워졌다. 그는 이미 담장을 넘어 저 편으로 가 버린 거다. 저 편과 이 편으로 갈라진 우리는 다시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잠시 동안 허탈함에 비틀대다 주저앉아 있다가 보면 누군가 이 담장 앞에 서서 똑같은 표정으로 저 너머를 올려다보고 있는 이가 보인다. 저 너머에 보았던 걸 이야기해 주고 그에게 어깨를 먼저 내어준다. 이제 내가 그의 어깨를 밟고 넘을 차례다. 그는 허탈함과 배신감을 맛 볼 게 분명하다. 기회 앞에 갈등이 찾아든다. 넘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가 그를 속인 걸까. 그의 순진함을 이용해야 하는 이 양심은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치유가 될 수 있을까. 과연 저 편에 화려하게 펼쳐 보이는 광경 속에는 자유가 존재하는 걸까. 다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든다. 과연 넘어도 될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해 질 무렵 알게 된 이 곳에선 꽤나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특정한 사안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자신의 주장을 쏟아내는 격앙된 모습에선 비장함 마저 보였다. 과연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까울 지 호기심이 들어 시작한 익명성의 공간인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특별한 느낌이 들어 매일매일 기다리는 우연히 알게 된 친구들. 내 어떤 모습을 그들은 바라보고 있을 지 궁금하다. 말없이 떠난 친구도 여전히 지켜보고 있음을 난 느끼고 있다.

 

 

이 곳을 넘을까 말까 여전히 바라보고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은 또 다시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리라. 아니면 훨씬 단단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 곳은 어쩌면 내 일상 속,

나약한 모습을 감추기위한 장소에 불과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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