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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책

예술가로서의 비평가(마술피리)

 

 

 

Der hoe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
내 가슴은 지옥의 복수심으로 끓어오르네
Tod, und Verzweiflung,
죽음! 그리고 절망!
Tod und Verzweiflung flammert um mich her
죽음과 절망이 내 주위에 불타오르네!
Fuehlt nicht durch dich, Sarastro
너로 하여금 자라스트로가

 

Todesschmerzen, Sarastro Todesschmerzen,
죽음의 고통을 맛보지 않는다면
so bist du meine Tochter nimmer mehr.
그러면 넌 더이상 내 딸이 아니다
So bist du mein, meine Tochter nimmer mehr,
그러면 넌 더이상 내 딸이 아니다
meine Tochter nimmer mehr
내 딸이 더이상(아니다)!
du bist meine Tochter nimmer mehr!
넌 더이상 내 딸이 아니다
Verstossen sei auf ewig,
영원토록 버림받고,
verlassen sei auf ewig, zertruemmert sei auf ewig!
영원토록 빈궁하고, 영원토록 파괴될 것이다!
alle Bande der Natur
자연의 모든 끈이 질서가
Verstossen! Verlassen! Und zertruemmert!
버려지고! 빈궁해지고! 파괴되리라!
alle Bande der Natur...
자연의 모든 질서들이

 

alle~ a~ lle~
모든~ 모든~!
alle Bander der Natur!
모든 자연의 질서가!
Wenn nicht, durch dich, Sarastro wird erblassen!
만약 네가 사라스트로를 죽이지 않는다면!
Hoert! Hoert! Hoert! Rachegoette!
들으소서! 들어주소서, 복수의 여신이여!
Hoert! der Muttersschwur!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예술가로서의 비평가(일탈의 미학 중..)

(길버트의 대사 중...발췌함)

 

내가 보기에는 문학비평가가 좀더 범주도 넓고 안목도 높고 더 고상한 재료를 다루기 때문에

가장 우선적이긴 하지만, 각 예술에는, 말하자면 각각 할당된 비평가가 있지. 배우는 극의 비평가야.

배우는 시인의 작품을 새로운 상황 아래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보여주지. 그는 글을 받아들

여서 행동, 제스처, 목소리 같은 매체로 드러내지. 가수 또는 현금이나 비올의 연주자는 음악의

비평가라네. 그림의 부식동판화가는 그림에서 아름다운 색채를 앗아가긴 하지만, 새로운 재료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그림의 진정한 색감, 색조, 가치, 질량감을 보여주지. 그래서 나름대로 그는

그림의 비평가가 되는 거야. 비평가란 우리에게 예술작품을 형태와 다른 형태로 보여주는 인물이고,

새로운 재료의 사용은 창조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비평적인 요소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위대한 배우가 세익스피어를 연기할 때, 우리는 같은 경험을 하게 되지. 그 배우의 개성이 해설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는 거야. 사람들은 때로 배우가 자기들의 햄릿을 우리에게 내 놓을 뿐 세익스

피어의 햄릿을 내 놓지는 못한다고 말하지. ---이 말은 오류거든---. 사실을 따져봐도,

세익스피어의 햄릿이란 건 없어. 햄릿이 예술적으로 명확하게 형상화되었기는 하지만, 그 인물에는

삶에 필연적인 온갖 불확실성 또한 담겨 있거든. 우울증만큼이나 햄릿도 많다네....

 

이상한 일이야. 이 감정의 전이란. 우리는 시인이 앓는 그 병을 앓고,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우리에게

전해주지. 죽은 자의 입술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재가 되어버린 심장이 기쁨을 전달해준다니까.

우리는 광틴의 피 흐르는 입에 입맞추러 뛰어가고, 마농 레스코를 따라 전 세게를 돌아다니지.

아폴로니우스의 광적인 사랑도 우리 것이 되고, 오레스테스의 공포 또한 우리의 것이 된다네. 우리가

느낄 수 없는 열정이란 없으며 우리가 누릴 수 없는 쾌락도 없으며 우리는 우리의 통과의례의 시기와

자유의 순간도 선택할 수 있어. 삶! 삶! 우리는 성취나 체험을 위해 삶에 뛰어드는 일은 없도록 하세!

삶이란 상황에 의해 편협해지고, 표현에 일관성이 없고, 예술적이고 비평적인 기질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 즉 형식과 정신의 섬세한 대응이 없단 말이야. 삶은 그 제품을 사는 데 그 대가를

너무 비싸게 치르게 해. 우리는 인생이 비밀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것도 끔찍할 정도로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사게 된단 말야....

 

그렇다네, 어니스트. 관조하는 삶, 즉 무엇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 목적이고, 존재하는 것

뿐 아니라 생성이 목적인 그런 삶이야 말로 비평정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네. 신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이 자신의 완벽함에 대해 숙고하거나, 에피쿠로스가

상상하듯이 자기들이 만든 세계의 희비극을 차분한 관객의 위치에서 지켜보면서 말이야. 우리 역시

신들처럼 살 수 있을거야. 인간과 자연이 제공하는 다양한 장면들을 적절한 감정을 지닌 채 관조

하면서 말이야. 우리는 스스로를 행동에서 분리함으로써 정신적인 존재가 되고, 활력을 거부함으로써

완벽해질 수 있을 거야. ....

 

왜 못 믿겠는가? 예술에서만 육체가 곧 영혼이 되는 건 아니야. 인생의 모든 범주에서 형식은 사물의

출발점이 된다네. 리듬이 있는 조화로운 춤의 동작은, 플라톤이 말했듯이, 정신에 리듬과 조화를

옮겨다주지. 뉴먼은 우리로 하여금 그를 찬양하고 알도록 만들어준 그 위대한 성실한 순간들 가운데,

형식이 믿음의 양식이라고 외친 적이 있지.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옳은 말을 했는지 몰랐겠지만, 그의

말은 옳았다네. 무릇 신조란 합리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반복되기 때문에 신봉된다네. 그렇다네.

형식이 전부야. 형식이야 말로 인생의 비밀이야. 슬픔을 표현하려고 애써보게. 그러면 그 슬픔은

자네에게 귀중한 것이 될 거라네. 기쁨을 표현하려고 해보게. 그러면 그 환희가 훨씬 커질 테니까.

자네는 사랑하고 싶은가? 사랑의 기도를 써보게. 그러면 그 단어들이 사랑의 열망을 만들어낼 거야.

세상은 그 열망에서 단어가 생긴 거라고 착각하지만. 슬픔의 언어에 흠뻑 빠져보게. 햄릿 왕자와

콘스탄스 왕비에게서 슬픔의 언어를 배워보게. 그러면 자네는 단순히 표현하는 것이 곧 위로의 한 방식이

된다는 것. 그리고 열정을 탄생시킨 형식이 곧 고통을 끝내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될거야. 그래서,

예술의 범주로 다시 돌아가자면, 비평적 기질뿐 아니라 심미적 본능 ---모든것을 미적 상황에서 드러내

보여주는, 그 실수하지 않는 본능--- 을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형식이라네. 형식을 숭배해보게. 그러면

모든 예술의 비밀이 자네에게 드러날 거야. 그리고 창작과 마찬가지로 비평에서도 기질이 전부라는 것을

기억하게나. 그리고 예술에서 유파는, 그것이 발생한 시기가 아니라 그것이 호소력을 갖는 기질에 의거하여

역사적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미학은 윤리학보다 우월하다네.

미학은 좀더 정신적인 범주에 속하지. 사물의 아름다움을 파악하는 것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점이야. 개인의 발전에서, 옳고 그름의 감각보다는 차라리 색채감각이 더 중요하다네. 사실

의식이 있는 문명사회의 범주에서 미학과 윤리학의 관계는 외적 세계의 범주에서 성적도태와 자연도태의

관계와 같다네. 윤리학은 자연도태처럼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고, 미학은 성적 도태처럼 삶을

사랑스럽고 멋진 것으로 만들고 새로운 형식으로 채워주며 진보와 다양성과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지.

우리가 우리의 목표인 진정한 교양에 도달할 때 우리는 성인들이 꿈꾸어온 완벽함, 금욕주의자로서 포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영혼에 상처를 받지 않고 원하는 바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또 영혼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 불가능한, 그런 사람들의 완벽함에 도달하게 된다네.

그 영혼은 매우 신선하여 좀더 섬세한 감수성의 요소들로 변형될 수 있고, 또 새로운 양식의 사고와 행동과

열정의 요소들로 변형될 수 있는 그런 것이라네. 그런데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흔해빠진 것,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천한 것, 수치스러운 사람들에게는 타락한 것으로 보이지.

이러한 사상이 위험한가? 맞아, 위험해. 내가 말했던 것처럼, 모든 사상은 다 위험하다네...

 

맞아. 나는 몽상가라네.

몽상가는 달빛으로만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고,

그가 받는 벌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새벽을 맞이하는 것이니까...

                                                                                                                 -O.Wil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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