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잘 됐네요. 형님. 그러면 내일 뵈요."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이었다고 해도 겨울은 겨울이었나 봅니다.
물론 조금 이른 시기, 이미 대청호, 청호지, 동림지 등을 찾았던 클럽가족들이 배스 소식을
전해 주길래 안달이 난 나, 함께 갈 회원들에게 전화를 넣어봤지만 역시 월요일날 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현실 앞에 그럼 마지막으로 동학이 형이나 꼬셔보고 안 되면 그냥 혼자라도
떠나야지란 심정으로 전화를 했는데 마침 월요일 쉬려고 휴가를 내 놨었다네요.
잔뜩 기대감에 부풀고 야근을 하고 있는데 중부지방에 폭설을 예고하는 뉴스,
그리고 여지없이 자정녁부터 뿌려대는 눈입니다.
'그래도 전라도는 괜찮을거야' 라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하고 마침내 아침 퇴근 시간,
다행히도 내린 눈들은 그리 낮지 않은 기온덕에 지나는 논과 밭 그리고 산과 강변으로 짙은 흔적을 남겼지만
도로 위로는 얼어붙지 않아 신나게 집으로 달려오자마자
허겁지겁 아침식사를 하고 보트를 실으려 클럽창고로 향했습니다.
"동학이형! 지금 보트 실어서 갈테니까 아지트로 열 시 반까지 나와 있으숑!"
그래 알았다는데 이 형님 목소리가 또 어제 어디서 잔뜩 펐나봅니다.
'으이그~ 인간아 술 좀 작작 무그라'
뭐 솔직히 저도 매 한가지긴 합니다. ㅋㅋ
역시나 엄청 피곤한 모습으로 나타난 형님,
"난 잘테니까 니가 알아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가봐"
라며 무거운 몸, 시트를 뒤로 젖혀 쓰러집니다.
대청이냐, 경천이냐 고민하다 오늘만은 꽝을 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제가 가장 자신있는
경천지로 향하고 고속도로를 달렸죠. 두 시간이면 올 수 있는 곳이지만 30분가량 지체할 수 밖에 없었던
에피소드는 생략하고 어쨋든 오후 한 시경 보트를 조립하고 마침내 물 위에 섰습니다.
"어라? 이거 바람이 장난이 아닌데?"
보이시나요? 이 출렁대는 호수의 물결이..
아직 농사철도 아닌데 산수장 가든 옆 슬로프 끝이 모두 드러날 만큼 물을 빼버린 경천지의
첫번째 포인트로 생각했던 봄철 산란지 쪽을 먼저 탐색해 봤지만 수심이 겨우 1미터도 나오지 않고,
드러난 포인트에서 워킹 낚시를 즐기고 있는 친구들에게 좀 나오냐며 물으니 역시나 전혀 반응이 없다고 해
두 번째 포인트 산수장에서 제방을 바라볼 때 오른 쪽 골창과 직벽지대를
노려보려했지만 거센 바람에 밀려나는 보트를 조종하기도 쉽지도 않을만큼
도무지 낚시를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여기 밖에 없다'
란 생각으로 거센 물살을 갈라 그나마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제방 옆 수문쪽으로 난 골짜기로 들어갑니다.
최고 온도 영상 7도 속에서 최대 19노트로 불어온 바람은 온 몸을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더라구요.
그나마 전 두꺼운 추리닝을 두 겹이나 껴 입어 덜한데, 우리 멋쟁이 동학이형님은 동네 옆산 등산가는 차림으로
나와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했나 봅니다. 바람을 겨우 피할 수 있는 곳에 잠시 내려달라더니 서둘러 썩어
말라버린 나무가지들을 모아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이 계절에는 진짜 불조심해야 합니다. 피웠던 불 호수물을 떠 완전히 소각하고 흙으로 깨끗이 덮은 다음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잠시 몸을 녹인 다음, 드디어 이 곳에서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후 세시가 넘어가면서 이 곳까지 바람은 불어 닥쳤고, 형님 두 마리 저 한마리로 대충 포인트에 적응한 것에
만족하며 철수할 수 밖에 없었죠.
산수장 가든으로 돌아오는 호수 종단길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보트 정면을 때리는 물결이 튀어 얼어붙은 몸에 뿌려대는 그 고통은 이 계절에 보팅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를거예요.
이 찬바람에 질려버린 듯 동학이 형님은 그만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잔 엄살을 피워댑니다.
"뭔 소리야 형! 난 어차피 오늘 오후는 그냥 탐사만 해 보고 바람이 멎은 내일 새벽 보고 온거라구!
일단 오늘은 대충 여기서 백숙이나 시켜서 모처럼 소주한잔 하고 내일 보자고. 내일은 분명히 바람이 잦아들테니."
요즘 클럽활동에 뜸하던 전전 회장이었던 형님과 클럽 이야기를 하며 마셔버린 소주 4병,
그리고 입가심 맥주 세병이 가져다 준 취기와 피곤함이 겹쳐 골아떨어진 다음 날 다섯 시가 되자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굳이 멋을 낼 필요없는 낚시꾼 두 사람은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어제 저녁 사장님께 부탁한
냄비를 부루스타 위에 올리고 컵라면을 끓여 아침식사를 마치고 거짓말처럼 고요해진 호수로 다시 나갑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대신, 현재기온 무려 영하 3도를 가르키네요. 거참 날씨가 더럽게 안 도와줍니다.
그래도 바람이 부는 것보단 훨씬 나은 조건이라고 위안을 삼고 낚시를 시작하는데 이건 뭐 겨울철 송어낚시도 아니고,
릴링을 할 때마다 가이드에 얼음이 맺혀 삐걱대 로드를 물 속에 담갔다가 털고, 릴의 레벨와인더에까지 끼어 오르는
얼음을 녹이려 이미 얼어버린 엄지 손가락을 얹어 놓아야 하는 상황.
"그래도 어제보단 낫잖아? 형? 해가 뜨고 나면 좀 괞찮아 질거야 형~"
"야, 우리 오늘 진짜 팥빙수 많이 만든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해가 뜨지 않은 어제의 두 번째 포인트,
골과 직벽으로 이루어진 곳 수심 약 4-6 미터권으로 던져 넣은 더블링거 프리리그 채비에
녀석들이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4자에 겨우 턱걸이 할까 말까한 녀석들이
조금씩 웜 끝에서부터 씹어먹는 듯한 간사한 입질을 참을성있게 기다려 챔질을 하니
경천지 특유의 힘센 녀석들이 간간히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직벽에서 아주 천천히 바닥을 더듬으며 대여섯 수씩 손맛을 보다보니 또 다시 추위를 참지 못한 동학이형,
어제 불 피웠던 곳으로 다시 가재더니 또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형이 불을 지피고 몸을 녹이고 있는 동안 전 이 포인트에서 또 고만고만한 네 마리를
뽑아 들 수 있었고 오전 열시가 조금 넘어가자 또 조금씩 불어오기 시작한 바람이 무서워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어제 오늘 동학이형 총 6 마리, 저 10 마리.
이 정도면 아직 이른 시즌 낚시치곤 충분히 재미있게 즐긴 낚시라고 할 수 있을거예요.
어제 지 혼자 대청 이평리를 향한 우연이 녀석이 달랑 한 마리로 마쳤다는 소식..
아지트로 돌아오니 큰 형님가게에서 형님과 볶음밥을 먹고 있던 클럽 막내가 징징대며 무용담을 들려줍니다.
"형님, 저 어제 대청에서 죽을 뻔했어요. 바람이 하도 불어서 잠깐 쉬려고 배에서 내리는데 그만 미끌어져서 물 속에
풍덩하고는 진짜 개떨듯이...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돌아오던 길..동학이 형님이 던진 농담.
"야, 이번에 진짜 나 이름 바꿀 뻔했다."
"뭐로?"
"동태로.."
아오 썰렁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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