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커튼이 길게 늘어져 음산함이 사라지지 않던 시골교회의
하얀 건물 한쪽 곁에서 시작된 녹슨 종소리는 마을 가장 귀퉁이
에 자리한 상여집에까지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지고 길게 늘어진
밧줄을 잡아 매달린 젊은 여자 전도사님의 표정이 감히 나도 해
보고 싶단 말조차 건네지 못할 만큼 진지했다.
가을 들녘에서 땀방울을 훔치던 품앗이 나온 일손들은 그제서야
허리를 펴고 집으로 돌아 갈 시간이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머리에 똬리를 얹고 새참을 나르던 아낙네를 따라 온 까까머리
머슴아 코에는 길게 마른 콧물 자국에 때가 엉겨 말라붙었다.
교회 마당 귀퉁이에 밤나무 가지가 손이 닿을 만큼 늘어지고
뾰쭉한 가시 덮인 겉껍질을 수줍게 벗어 속살을 드러내면
어디선가 주워 온 작대기로 후려 쳐내 떨어뜨린 다음, 두어 개
들어 있던 매끄러운 알밤을 조심스레 꺼내 들고 떫떠름한 껍
질을 이제 다시 솟아나기 시작한 앞니로 벗겨냈다.
요령 있게 타고 오른 소년이 늙은 나무를 밟고 서서 가지를 세
차게 흔들어대면 힘없이 매달려 있던 열매들이 서리가 내려앉
아 먼지 하나 일어나지 않는 마당에 쏟아졌고, 마당 한 쪽에 놓
아 둔 광주리에 열심히 주워 나르다가 남 몰래 입에 넣은 통통
하게 반 쯤 빨개진 대추는 무척 달았다.
어느새 사라진 벌레 대신 곡식의 낟알들로 허기를 채우던 철새
들이, 입다 버린 비옷에 지푸라기 엮어 만든 모자를 눌러 씌운 허
수아비의 겨드랑이에 북서풍이 불어 들면, 노을이 선명히 그려
진 저녁하늘에 V자를 그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긴 여행을 떠나
갔다.
점점 짧아지는 황혼 뒤에 찾아오는 기나긴 밤을 위해
어머니의 할머니가 들려주던 무서운 이야기 대신, 붉은 커튼을
열어젖힌 일요일마다 까만 옷을 엄숙하게 차려 입은 여자 목사
님이 들려주던 붉은색 성경책에 담긴 전설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일까. 비 오는 깊은 가을 날, 별조차 사라진 시골길
산 아래 죽은 나무에 비치던 도깨비불의 흔적들이 눈 앞에서 춤
을 추고, 귀신 들렸다는 외아들을 위해 밤마다 벌인 무당의 굿소
리가 계속 들려와도, 밤새 꺼지지 않고 시골 마을을 붉게 비추던
십자가에 감사한 마음으로 안심하고 잠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