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적에는 한 어버이 속에서 동북으로 낳았건만, 장형께서는
가문의 종손이 되시고, 하루아침에 천만석꾼의 상속자가 되지 않으셨는
가. 헌데, 우리라고 이렇게 찌그러진 논밭 뙈기나 주무르며 살다가 말란
법이 있는가? 그럴 수는 없지 않느냐고, 일찍이 선친께서는 본디 문약하
신 분으로 우리 형제한테 무슨 변변헌 재산도 못 남겨 주셨지만, 그때 세
상에는 또 그것이 별 흉도 아니었어. 허나, 지금은 세상이 달러. 이제 두
고 보아. 앞으로는 재산 있는 사람이 양반이 될 것이야. 돈이 양반이란
말이지. 동생도 물정을 좀 깨쳐야겄네." [혼불] 최명희
최명희의 [혼불] 중, 이기표가 동생 이기응에게 이르는 말이다. 이기표의 헝 이기채는 작은 체격에
몸이 약해 늘 기침을 하고 위가 안 좋아 죽을 먹어야 하지만 그 성격 하나는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깐
깐한 사람으로 그가 늘 두드리는 놋쇠 재떨이처럼 쨍 소리 나는, 결코 변하지 않을 사람이다. 부모에
지극 정성으로 헌신하며 일제로 인해 무너져가는 나라에 가슴 아파한다. 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충효와 같은 유교적 덕목이며 가문의 명예이다. 반면 동생 이기표는 큰 체격에 건장하며
눈빛이 형형하고 세상 소식에 밝으며 판단이 빠르다. 형 이기채의 재산 관리를 하면서 오히려 형보다
도 더 많은 재산을 소리소문 없이 모았다. 그는 나라가 망했다는 사실보다 변화하는 시대에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것인가가 큰 관심이다.
이 두 형제는 각각 수구와 보수를 전형적으로 대표하는 인물처럼 여겨진다. 형 기채는 사라져가는
시대에 큰소리치며 살았으나 앞으로 기울 것이 분명해 보이고, 기표는 용의주도하게 준비하여
다가올 시대의 주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우리 역사에서 수구와 보수가 그러하였다. 수구는
원칙에 볼모처럼 찹혀 있어서 그 원칙에 어긋나는 다른 많은 수단을 사용할 수가 없다. 반면 보수는
특정한 원칙이 없기 때문에 어느 수단이든 사용할 수가 있다. 마치 이를 증명하듯 보수라는 말에
목적어가 없는 반면, 수구는 '舊'라는 목적어가 있다. 보수의 영어인 conservative에는 방향이 없고,
반동이라는 뜻의 reactionary는 '과거에로'라는 방향이 있다. 목적과 방향이 없는 것이 보수의 힘이며,
이기표가 이기채보다 더 강건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 두 형제는 여러가지 면에서 일치하는 부분도 잇다. 이기채의 어머니 청암부인의 묘에
투장을 하였다는 혐의로 마을 총각 춘복이가 끌려와 피투성이가 되도록 덕석말이에 몽둥이찜질을
당했을 때 이기채는 거의 정신을 놓을 정도로 분노하였으나 이기표는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여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그러나 두 형제 모두 억울하게 당한 춘복이
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든지, 양반이 아닌 상놈의 서러움에 대한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보수와 수구는 형제다. 보수와 수구는 공통적으로 사회 정의나 양심이나 약자에 대해 관심이 없다.
특히 보수와 수구는 사회 안정기에 구분되지 않는다. 갈라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보수와 수구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우리 역사를 보면 변화의 순간에 그 둘은
갈라졌다. 변화의 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에 맞서는 사람이 수구이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보수이다. 파도에 맞서거나 아니면 파도를 타는 것이다. 파도에 맞서 이기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수구는 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보수는 남는 것이다.
그러나 수구든 보수든 파도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그것은 진보의 몫이다.
-이나미- 맺음말 중에서..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로 연일 인터넷 게시판이 뜨겁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국민 모두를 민족주의자로 변신시킬만큼 강렬한 증오로 채워져 있다.
해방 후 청산하지 못한 친일 행적의 후예들이 여전히 사회의 기득권으로 행세하며 그때의 암울했던
역사에 마저 그들이 가장 증오하는 맑스의 유물사관까지 가져다 붙이며 변명을 넘어 왜곡을 일삼는
짓에 터져나온 분노를 바라보다가, 이른바 신자유주의로의 이념 정리를 마치고
드디어 철도 및 의료 등 공영부문 기간산업에서 자본이 지배하는 구조만들기란 행동에 옮기려는
보수주의자들에 맞선 자칭 '진보' 를 표방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딘가 모순스럽다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인간은 이기심 앞에서 누구라도 굴복해 버릴 수 밖에 없는 존재일 뿐인가?
나쁜 체제인 자본주의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가장 덜 나쁜 체제인건가?
부자들에게 기분이 나쁜 건 그들이 나보다 많이 가져서가 아니고 그들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이다. 거짓말을 밥 쳐먹는 것보다 더 쉽게 하는 것 같은 쥐새키 낮짝만 쳐다보면 하루가 재수없다.
탈 이념화의 세상이란 건 주변 친구며 지인들을 바라보면 명확해진다.
모두들 돈 잘 버는 내가 아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부자인 사람을 경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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