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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루어낚시

안면도 광어출조 전날..

오후 세시가 넘어갈 무렵 전화가 울린다. 어라? 누나가 왠일로 전화를 다했을까. 아차 내일 새벽 함께 첫 바다출조를 하기로 했었구나. 여보세요. 뭐라고? 내일 새벽에 배타러 갈건데 무슨 배스를 잡으러 가자는 거냐고. 에구 알았수. 누구 명령이라고 감히 거역을 할까. 삼십분 후에 댁으로 모시러 가겠슴다아~~.

 

스무 살 딸아이를 가진 중년에 접어든 지 한참인 누나가 처음으로 나에게 동행출조를 부탁하는 거다. 지금 당장 가까운 저수지라도 다녀와야 우울한 기분이 풀릴 거 같단다. 작년에 우연히 알게된 클럽 회장을 통해 가입하고 배스낚시의 재미에 흠뻑 취해있는 모습을 보면 그 대단한 열정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고 보통 여자들이라면 감히 곁에 오지도 못할 수컷들뿐인 회원들과도 서슴없이 그냥 편한 누나처럼 지내고 있다. 어제 밤 계획했던 장성호로의 보팅낚시가 일타이방 형님의 갑작스런 집안일로 취소되어 버려 혼자서 낑낑대며 실어 놓았던 보트와 엔진 가이드 모터 밧데리 등을 여자 혼자 힘으로 창고에 다시 가져다 두고 나니 열이 올라 죽을 뻔 했다나? 누나의 말이 재밌다. 나 먹을 쌀 20kg도 못 드는 주제에 그 무거운 보트를 차에다가 실었다가 내리는 거 보면 나도 정상은 아닌 거 같다나? 낚시꾼이 되는 까닭은 되어봐야 아는 거다. 누구나 한가지 정도씩은 가지고 있는 취미생활 중에서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종목이라는 불명예는 아직도 그 위치에 변함이 없는 듯하지만 게 중엔 이런 누나들도 있는 법이다.

 

대충 낮잠을 즐기다가 깨어 즐겨 부르던 노래의 악보를 찾아 며칠 전 새로 산 기타의 코드를 아직 덜 풀린 손가락으로 예전의 실력을 되살려보려 기타줄을 튕겨가며 잠긴 목을 풀고 있다가 누나의 호출에 까치집 진 머리를 가리려 낚시모자를 대충 눌러쓰고 눈가에 달라붙은 눈꼽은 검정색 편광썬글라스로 가리고 도착하니 제법 큰 태클가방과 스피닝로드 하나를 들고 아파트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폼이 영락없는 낚시꾼이다!

 

"누나도 어지간하요. 내일이면 배 위에서 실컷 할 낚시 뭐가 그리..."

"바다는 솔직히 처음 가는 거라 잘 몰라서 그래. 잡을 수 있을 지 없을 지 확신도 안 서고..특히 지난 번 쭈꾸미 낚시때 처럼 너에게 민폐나 끼칠까봐도 그렇고, 이제 배스는 자신이 붙어서 오늘 일타이방이랑 장성 갔다가 실컷 놀고 올려고 그랬는데..."

 

어제 출근길에 회장이 갑자기 광어출조를 제안하길래 그냥 오케이! 했던 사연이 그랬단다. 원래 회장네 직장동료 14명이 배 하나를 예약했는데, 그만 두 사람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땜방용으로 나와 춘천누나가 섭외된거다. 나야 뭐 익숙한 낚시라서 그냥 별다른 거 묻지 않고 간다고 한거지만, 누나는 회장과의 의리?를 생각해서 마지못해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서 간다고 했다는 거다. 어차피 배에서 열 댓명이 함께 하지만 일단 낚시가 시작되면 자신의 낚시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법.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다운샷 채비를 묶는법도 다시 익힐 겸 배스낚시부터 좀 해 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저수지를 돌아다니는 건 아직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고백해 오는 누나.

 

"내가 솔직히 아침 같으면 혼자서도 다니거든. 근데 오후에는 혼자 다니기 좀 그래."

"그럴거야. 어둑해지면 술 취한 녀석들도 있고 말야."

 

내일 갈 광어낚시의 기초부터 대충 설명하며 오후 네시가 조금 넘어 저수지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물가로 향하는 누나. 어지간히 물이 그리웠었나 보다. 빨간색 C-tail을 다운샷으로 묶어 날리는데 비거리가 상당하다. 리프트 앤 폴 시키는 폼에 잠시 감탄하며 내 채비를 꾸리는데 히트!를 외치는 누나. 제사상에 올리는 조기만한 크기의 배스를 낚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안면도 출조 전날..그냥 가서 횟감이나 조금 잡아다가 낼 저녁 때 소주나 두 병..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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