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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책

윤창중 '피정(避靜)'

 

 

 

 

그게 2013년이었다. 절대 박근혜가 선거에 이길 수 없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했던 건 상대편에서 부각시킨 박정희의 과오보다는 가정을 꾸려보지 못한 한 여성에게 가부장적 문화가 여전히 팽배한 이 사회에서 과연? 이런 의문 때문이었다. 내 예상은 빗나갔다. 대선 직후 일부 개표 결과에 불복하는 야권에서는 개표조작설과 더불어 수 개표론도 나오곤 했었지만 내 주변에선 그녀를 찍었다는 사람들도 많았기에 그냥 아니면 말고 식의 이른바 ‘썰들로 치부해 버리고, 겨우 대선 때나 되어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려있는 정치 기사들이라도 보는 수준의 관심을 다시 꺼버린 후 얼마나 되었을까? 윤창중이란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그의 이름이 내 귀에 들려온 거다. 뭐지?

 

결코 친근한 인간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진 그의 이름이 여전히 내 기억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건 언론이라고 생겨먹은 곳이라면 어김없이 무차별적 인신공격적 기사의 도배가 이루어졌고, 아예 나 홀로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 속, 외딴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나 그 이름이 닿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딜 가나 누굴 만나거나 그에 대한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이었지만,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지? 딱 그만큼의 관심만을 기울였고 그 의문투성이 사건에 대한 나의 결론도 빨랐던 걸로 기억한다.

 

지구상에서 안보의 문제로 가장 뜨거운 나라, 바로 내 나라이고,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일정을 수행하러 간 사람이 그럴 여유가 있어? 심지어 무슨무슨 패키지 관광을 떠났다고 해도 일반인보다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사람이 아닌 그런 비슷한 위치와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 불가능할 그런 일탈을 범했다니 어이가 없어 그 뒤로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6.29선언을 만든 6월 항쟁과 이어진 올림픽의 감동이 잊혀져 갈 무렵이랄까?  나의 대학시절에도 여전히 데모는 있었고, 교내에 최루가스 냄새가 심심찮게 풍겨 오는 와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저히 그 역한 냄새 때문에 자리를 피해야 했던 순간까지 농구공이나  잡고 놀았던 내 여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소중한 내 시간- , 직장 생활을 하며 배드민턴에서 배스낚시로 옮겨졌고, 삼십대 중반을 넘긴 어느 시점에 갑자기 뇌출혈이란 사고를 접한 뒤 두 번에 걸친 수술로 인해 그 좋아하던 운동을 접은 뒤로는 독서란 장르가 추가되어 대학시절 호기심만 겨우 끌었던 오스카 와일드,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등의 작품이 내 삶의 한 부분을 채우고 있었다. 우연히 만나게 된 백지원의 부제 왕을 참하라에서 이덕일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사도세자의 고백’,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습관적으로 인터넷만 열면 보이지 않는 이를 향해 내지르는 제법 진지해 보이는 욕설들이 웃겨서 댓글들을 보다가 눈에 띈 뉴라이트란 단어는 아예 경멸의 대명사였는데, 마침 우연히 손에 들게 된 책이 이영훈이 쓴 나라만들기 발자취’, 그 뒤 이승만에 관한 책들을 몇 권 더 만나게 되고나니, 우파네 좌파네, 수꼴이네 종북이네, 서로를 비난하는 원인을 대충이라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난 정치란 부분은 웬만하면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잠시 호기심이라도 들어 들여다 보려다 보면 어김없이 그냥 짜증스러운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점이 싫기 때문인데 결코 나쁜 습관은 아니란 생각이다.

 

비번 날이면 하루 다섯 시간 운동에 밤늦게는 기본에 거의 새벽까지 사람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던 습관은 수술 이후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이젠 누구보다 퇴근을 서둘러 아내와 단 둘이 저녁을 즐기며 나 홀로 마시는 반주와 쉬는 날이면 함께 가까운 곳이라도 나가 내가 낚시를 하는 사이, 아내는 예쁜 꽃이며 풀들을 카메라에 담아 와 인터넷을 뒤지고 야생화도감을 뒤져 녀석들의 이름을 알아내는 즐거움에 살고 있는 나에게 며칠 전 윤창중이라는 이름이 다시 들려 왔다.

 

그러면 그렇지!’

 

내 반응은 이랬지만 아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당시의 상황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나 보다. 사건이 이슈화 되고는 갑자기 피해자가 사라졌고 무슨무슨 음모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는데, 이렇게 되었으니 윤창중이 명예를 회복하려면 빨리 사라진 피해자 여자를 잡아야 한다며 열을 올리기에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알게 된 윤창중의 칼럼세상’, 워싱턴 경찰 발 공소시효 완성이라는 소식에 때를 맞춰 벌써 세상에 나와 다시 글을 쓰겠다며 공언하자마자 과거와 똑같은 행태로 종편의 광대들이 합세하여 그를 조롱한 게 벌써 3개월 전이다. 책을 사 보자고 채근하는 아내에게 정치란 게 다 거기서 거기니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 없다랬지만, 그의 블로그에 올라 있는 그의 글을 대수롭지 않게 읽다보니 어? 그게 아니다. 자신보다 더 아파했던 아내에 대한 자신의 심정 토로로 시작하고 세상을 향한 원망보다는 자신에 대한 성찰로 더 많이 채워진 단순하게 예상했던 폭로 수준의 글이 아닌 완전한 에세이다!

 

첫 장에서 중간까지 읽는 동안 먼저 떠 오른 인물은 오스카 와일드그의 옥중기였는데 아마 윤창중 본인도 인정할 듯하다. 다른 점이라면 오스카 와일드는 끝내 비참한 죽음으로 점철되었고, 물론 와일드는 당시의 금기를 넘은 금지된 사랑의 달콤함에서 그에 대한 대가로 쓰디 쓴 맛을 죄다 봤다지만, 윤창중은 -여기서도 물론 현재로선 또 다시 뒤집힐 가능성이 완벽하게 ‘0’ 이라고는 볼 순 없겠지?-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언론권력의 횡포가 만든 감옥에서 당당히 돌아왔고, 사선을 넘나드는 시간동안 스스로 얻은 깨달음과 사명의식으로 그의 복귀를 반기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 반전의 역사를 만들고 있음을 난 본다

 

고려의 충신은 조선의 간신이요 매국노가 되고, 조선 말의 간신은 일제에게 있어서 충신이 된다는 명제는 황장엽과 태영호가 인민공화국을 등진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일반적 가치를 넘어 또 다른 사유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인간에 대한 반성적 사고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면 한 개인의 이념의 전향 따위야 심각하게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윤창중 자신이 밝힌 내용이지만 자신을 극우적 성향이라며 비판한 사람들에게 느낀 심한 배신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모습에서 비록 단련이 되어 돌아왔다고는 하나 여전히 삶의 뫼비우스, 그 길을 돌고 있음에 운명 자체를 완벽하게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도 발견하고는 오래 전부터 무가치하다고 느낀 지인들과의 이승만 박정희 논쟁에서 나 혼자서 결론지어버린 모든 독재자는 근본적으로 애국자이다.’, ‘대중 앞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독재자이다.’ 라는 명제로 되돌아 와 버렸지만 어딘가 개운치 않은 까닭은 너무나 황당한 억울함에 완벽하게 노출되어버린 그의 삶의 극적 요소 때문이리라. 그의 명예가 완벽하게 회복되길 빌어보다가 피정마지막 즈음에서 그가 언급한 사도세자의 억울함과 집권 기간 내내 관료들의 처형과 신원을 반복했던 영조의 눈물,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그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피정을 받고 짬짬이 이틀 만에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윤창중의 '피정' 에 눈을 고정시킨 아내가 분노와 안타까움의 감정을 번갈아 담아 탄식을 뱉고 있다. 쓰레기 언론, 속칭 기레기들이 경쟁하듯 누군가 설계한 사건임에 분명한 걸 마구마구 퍼 나르면서, 윤창중으로 하여금 '피정' 을 출판하게 만든 당사자, 수 많은 진실을 추구하는 국민이 궁금해 하는 사실을 어떤 증명도 하지않고 사라져 버렸지만, 제 목적은 다했다란 듯 얼토당토 않은 피해자라는 주장만 기레기들에게 남겨 둔 채로 -인간이 과연 얼마나 뻔뻔해 질 수 있을까- 자신이 '피정' 이 필요하다는 듯 사라진 여자와 사건의 당사자도 아니면서 신고만 하고 사라진 여자가 마치 자신에게 그 누명의 올가미를 씌워놓은 양, 반드시 잡아서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의혹투성이 일색의 이 사건의 배후를 명백히 밝혀야 한단다. 

 

윤창중도 고백하고 경고했던 사필귀정은 어떤 식으로건 이루어진다.’ 라는 믿음의 무너짐이 가속화되는 사회적 위기를 조장하는 데 앞장 선 언론과 정치권에 선전포고의 일성을 내 지른  윤창중, 그에게 자신이 믿고 있는 신께서 영원히 함께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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