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흐린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새로 장만한 코란도 차창을 두들긴다. 처음 잡아보는 디젤엔진의 핸들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듯 녀석의 묵직한 반응을 시험해 보는 아내와 이제부터는 이 녀석과 함께 만들어 갈 추억들에 대한 기대로 나선 일요일 오후의 데이트. 간척지 사이사이를 통과해야하는 비포장 자갈길도 진흙길도 안심이고 엔진 소음도 기대한 것보다 훨씬 정숙하다. 따로 분리된 짐칸은 쿠페탑을 올려 고무보트와 선외기, 가이드모터 등 장비들을 실을 거지만 아직 보트를 띄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 불었던 매서운 바람이 어제 멎었고 햇살이 비추더니만 오늘은 또 비, 하지만 차창 밖으로 내민 맨 손에 맞아도 차지 않은 이 봄비는 분명히 움츠렸던 녀석들을 깨우는 올 시즌의 신호탄임에 틀림없으리라!
아주 약하게 뿌리다 말다 오락마락 어느 새 도착한 연호교 아래로 먼저 있던 세 명의 낚시꾼들이 실망한 채 철수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내게는 혹시나 싶어 MH로드 달랑 하나에 프리리그 채비를 물렸다. 드문드문 떠다니는 물오리 가족들이 마지막 떠날 채비를 하고 백로의 우아한 선회를 쫓는 것은 카메라를 든 아내의 몫이고, 난 천천히 보이지 않는 물 속 바닥을 두들긴다.
별 소득 없이 다른 포인트를 찾아 막 떠나는 그들이 실망한 건 금호호의 수문을 열어놓았는지 평소보다 짙은 황톳빛 물색과 빠른 유속 탓 일거라 짐작하면서 내일 다시 혼자서 여유롭게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할 찰라, 금자천 중심을 향해 꽤나 멀리 캐스팅 뒤 바닥 돌을 스쳐올 때 어디서부터 쫓아온 녀석인지 거의 발아래에서 녀석의 간사한 입질이 전해왔다.
이 기회를 놓칠까보냐 힘껏 챔질 후 끌어 낸 아직은 빨간 입술 선명한 녀석은 기대했던 5짜에 딱 2센티 못 미치지만 환호하며 달려와 사진을 찍겠다고 포즈를 요구하며 매번 신기해하는 아내의 모습이 즐겁다.
돌아오는 길, 시야가 한층 높아진 조수석에 앉아 만개를 코앞에 둔 매화들이 시선을 유혹하는 한가로운 시골길이 갈라놓은 곳으론 무언가를 심으려 갈아놓은 붉은 밭도, 살짝 올라온 푸른 보리 순도, 그 곳 언덕 기슭에 자리한 아담한 농부의 집에서 피어오른 연기도, 한참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교실 뒤편에 모두 걸려있던 풍경들이었다는 사실에 슬쩍 웃음이 났지만 아내의 취향에 맞춰 새로 마련한 인디안 레드 껍질 코란도와
‘친구되기’에 열중한 아내에겐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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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포저수지에서 맨날 보는 48 센치미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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