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항 갑오징어 낚시(Acoustic Cafe)
파도에 심하게 흔들리는 배 갑판에 엎드려 퍼져 주무시는 클럽 최고 어르신. 아직 쉰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런 모습이라니요. 어제 밤에 도착한 포구에서 모처럼 나온 여행에 들뜬 탓인지 심하게 푸나 싶더니 급기야 취중진담을 쏟아낸 후유증치곤 너무 비참하게 떨어지셨다. 깡마른 몸집에 유난히 까만 피부, 짧게 깍은 머리카락 사이로 새치머리가 지나치게 많다 싶은 작은 얼굴을 하고 나름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진지하게 말하길 즐겨 하시더니 평소 당신의 진지한 견해에 대해 가볍게 넘긴다고 꽁했던 마음을 통제하는 데 실패한 거다. 슬며시 자리를 피해 편의점에서 캔맥주 한 개 사 들고 차에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들더니 역시나 고기란 녀석들이 입질이 뜸하다.
올해로 3번째, 가을마다 찾는 이곳의 갑오징어 자원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건지, 아니면 노련하다고 소문난 선장님의 매너리즘 때문인지 쭈꾸미 입질마저 뜸한 아침이다. 미친 우럭이 에기를 물고 올라오질 않나, 제법 크게 휘어져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낚아 올린 것은 바다 속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통발이었다. 폭소가 터져 버린 우리 배스낚시 클럽 정신병자들. 죄다 낚시에 미쳤으니 정신병자란 말이 욕이 될 수는 없을 거다. 그나마 선상낚시에 대한 경험이 좀 더 많은 인물들이 역시나 먼저 낚아 올리기 시작하는데 오늘의 대상어인 갑오징어보다 손님고기인 쭈꾸미가 대세다. 쭈꾸미는 아무리 많이 잡아 쿨러에 채워도 도무지 그 양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어른 주먹만 한 갑오징어가 올라와야 쿨러의 공간을 채우는 데 커봐야 손가락 두 개 만한 쭈구미 녀석들만 줄줄이 낚여 올라온다. 그래도 뭐라도 낚이기 시작하니 활기가 도는 선상이다.
간혹 갑오징어가 낚이는데 예년에 비하면 이건 도무지 아니다 싶다. 내 옆에 자리한 바다에 처음 나온 춘천댁 누님은 무언가를 낚으면 아직 낚시가 서투르단 핑계로 바늘에서 떼어달라고 내게 들이민다. 잠시 후 바닥에 걸려버려 끊어 낸 채비마저 내가 다시 묶어 주어야 하고, 에구, 내 낚시도 잘 안되는데 남의 낚시까지 도와주어야 하다니. 클럽의 홍일점이니까 뭐 그만한 배려는 기분 좋게 하는 거다. 지난 번 얻어먹은 술값을 오늘 갚는 셈 친다.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는 친구 녀석에게서 '딱'하는 소리가 나서 일제히 돌아보는데 낚시대가 부러져 나갔다. 바닥에 걸린 채비를 빼내려고 무리해서 잡아당긴 탓이다. 녀석들의 예민한 어신에 집중하고 고패질을 반복하는데 반대쪽에서 '으악'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난간에 잠시 벗어둔 썬글라스가 바다에 빠져버렸다고 비명을 질러대는 동생 녀석까지 참 가지가지 한다.
점심시간이 되자 쭈꾸미와 갑오징어 몇 마리를 넣어 끓인 라면을 찌개삼아 식사를 한다.
잠시 낚시를 접어두는 시간이다. 여기서 침묵하는 자는 고기를 낚지 못한 자다. 남보다 좀 나은 조과를 올려 낸 자들은 자신의 노하우에 대해 먹는 건 제쳐두고 듣는 자들에게 훈계질이다. 채비가 바닥에 닿으면 슬며시 들었다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다시 라인을 풀어 바닥을 확인하고 어쩌구 저쩌구 누구나 다 아는 건데 남들처럼 되지 않는 까닭을 설명하고픈 마음과 드러내서 말 좀 그만하라는 말 못하는 짜증나버린 마음이 날 침묵 속에 웃음 짖게 한다. 어쨋건 난 평균 이상의 조과를 언제나 올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다는 아직도 출렁인다. 출렁이며 달을 담고 별을 품었다. 먹물로 얼룩진 쿨러를 닦고 땀으로 젖은 몸을 씻고 소금기가 말라 붙은 낚시대와 릴을 세척하고 세탁바구니엔 낚시흔적을 품은 옷을 담았다. 오늘의 못 다한 이야기 감춰둔 이야기 차마 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멍청해져서 잊음이 금방금방 오는 기억 속에 숨겼다. 숨긴 기억은 어느 날이고 다시금 떠올라 미소 짖게 할지 울음 짖게 할지 그건 나중의 일이다. 아무튼
어제 오늘 낚시는 미련이 많이 남는다.
그래야 재미있고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낚시의 매력이 거기에 있는 거다.
사라진 고기들이 언젠가는 떼 지어 무리 지어 꿈에서 보일 듯하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잠이나 자고 내일은 다시 일상으로 간다. 일상에서 꾸는 꿈은 현실보다 어쩌면 더 짜릿할 지도 모른다. 언제나 최고의 순간을 기대하는 마음이 자가당착만 반복하는 실수투성이에게 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영원히 깨닫지도 못할 깨달음을 주는 현실에 답을 주고 있을 것이리란 기분에 하루를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