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마저 이겨낸 남자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그대는 무엇을 하였는가?
-F.니체-
도덕이란 그 본질상 악을 버리고 선을 따라야만 한다는 엄숙한 요구입니다. 따라서 이 엄숙한 소리에
따르지 못하는 인간들은 다시 '뉘우침'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의 절
망은 내면의 소리조차 따르지 못하는 '실존적 나약함'에서 나오는 절망이기 때문에 이전의 절망보다 더
욱 깊으며, 결국에는 '그 탓이 나에게 있다' 라는 '죄의식'으로 이어지지요. 괴테는 그레트헨의 죄의식
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괴롭다! 괴롭다! / 나를 책망하려고 / 오락가락하는 생각에서 /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 여기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마치 저 오르간 소리가
내 숨통을 / 틀어막는 것 같다. / 저 노랫소리가 내 심장을 / 속속들이 녹여 버
리는 것 같다./ (...) / 가슴이 죄는 것 같다. / 벽의 기둥이 나를 사로잡는다. /
둥근 천장이 나를 찍어 누른다! --아, 이 공기를!"
이처럼 도덕이라는 빛은 인간을 구원하기보다 오히려 어둠, 곧 뉘우침과 절망에 빠지게 한답니다. 키르
케고르는 "죄의식이 나타나자마자 도덕은 뉘우침에서 좌절한다. 왜냐하면 뉘우침은 최고의 도덕적 표현
이지만, 동시에 최고의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라고 했지요. 그리고 이 '최고의 자기부정'을 '무한한 자
기 체념' 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이것이 인간을 '종교적 단계'로 이끈다는 겁니다.
그는 이 말을 "무한한 자기 체념은 신앙 앞에 전제되는 최후의 단계이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레트헨의 '최고의 자기부정', '무한한 자기 체념'은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 단두
대에 죄 된 몸을 내맡기는 것으로 나타나지요. 그래서 몹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그녀가 종
교적 단계에 도달한 증거이자 구원받는 근거가 된 거지요!
구원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이지 선악의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 믿음 앞에는 죄의식이라는 실
존의 처절한 절망감 속에서 나온 '최고의 자기부정', '무한한 자기 체념'이 필히 전제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죄의식이 나타나자 뉘우치기는 커녕 오히려 자만심으로 그것과 맞싸우려 하지요.
그레트헨이 보이는 뉘우침과 파우스트가 보이는 자만심 사이에는 그 무엇으로도 건널 수 없는 얼음 계곡
이 놓여 있고, 이 아스라한 차이가 결국 이들이 받는 구원을 성격을 갈라놓게 됩니다.
이어지는 [궁전의 큰 앞뜰] 장면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죽음의 망령들을 불러 파우스트가 묻힐 무덤을
팝니다. 이미 눈이 멀어 그것을 간척사업을 위해 배수로를 파는 것으로 아는 파우스트는 작업을 더욱 독려
하며 다음과 같이 외친 다음 이내 쓰러져 죽지요.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더불어 살고 싶다. / 그때는 순간을 향
해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 하고. / 내
가 이 지상에 남긴 흔적은 /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메피스토펠레스가 "시계는 멈추었다." 라면서 애초의 계약대로 파우스트의 영혼을 챙기려고 합
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천사의 무리들이 내려와 그를 구원하지요. 이때 이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시구인
"누구든 줄곧 노력하며 애쓰는 이를 / 우리는 구원할 수 있습니다." 가 천사들의 합창 가운데 나옵니다. 그
레트헨도 '참회하는 한 여인'으로 다시 등장하여 성모에게 파우스트의 구원을 간청하지요. 이어 그의 구원
을 알리는 "영원한 여성이 / 우리들을 저 높은 곳으로 이끌어 올린다." 라는 신비로운 합창이 울려 퍼지며
[파우스트]는 막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싶었던 문제. 곧 '괴테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파우스트를 메피스토펠레스의 손아
귀에서 구해 낼 수 있었을까요. 살펴보시죠.
파우스트는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었지만 이성보다는 욕망, 도덕보다는 쾌락을 좇아 그야말로 '폭풍같이'
살았습니다. 그가 애초에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한 것도 어떤 사회적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었습
니다. 단지 개인적 욕망과 쾌락을 성취하기 위해서였지요. 실제로 그는 민중을 경멸하고, 독재적이며, 이기
적이지요. 예를 들어, '나는 몇백만 명의 백성을 위해 토지를 개척' 하였다고 외치지만, 토지는 여전히 그의
소유이고, 일꾼들은 강제로 징발되었습니다. 당연히 간척사업에는 노인 바치우스의 비난대로 '제물의 피도
틀림없이 흘렸을 것'이고 '밤중에는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지요. 하지만 파우스트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마치 봉건 군주나 자본주의 엘리트 기업가처럼 자기만족에 넘쳐 "쟁기와 괭이를 써라./ 지시한 것
은 곧 해치워라. / 최대의 사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 수천의 손을 부리는 하나의 정신으로 충분하리라." 라
고 외치지요. 그는 계몽주의적 민주사회를 위해 노력한 인물을 결코 아닙니다.
그가 노력하고 애썼던 일이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낭만주의적 '자기실현'입니다.
돌이켜보시죠! 그는 학문을 위해 평생을 다 보낸 어느 날에야, 자기 안에서 들리는 진정한 내면의 외침을 비
로소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오직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했지요.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지하세계에 내려가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었고, 그 무엇도 그를 막을 수 없었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 때문에 영원 속에서 헤맬 필요가
있을까! / 자기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다 이룰 수 있다. / 그런 식으로 지상의 날들을 보내라." 라고 외치며 오
직 '자기실현'을 위해서만 최선을 다했던 겁니다. 자기실현을 위한 이 무차별적인 열정. 이 무참한 용기가 그
를 구원한 겁니다.
"파우스트의 죄는 무엇인가? 안식을 모르는 영혼이다. 파우스트의 구원은 무엇인가?
역시 안식을 모르는 영혼이다."
라는 에리히 헬러의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지요.
알고 보면, 바로 이것이 독일 낭만주의의 궁극적 이상이자 긍정적 목표였습니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자기실현이란 단순한 자아의 완성이 아니라 신적인 것을 닮아가는 것이며
진리의 구현이자 구원의 길이었지요.
김용규 님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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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활약상과 영향력에 비해 사후에는 오랫동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작곡가들이 있다. 범위를 19세기 초에 태어난 인물들로 한정하자면 멘델스존과 리스트가 대표적일 것이다. 특히 리스트에 대한 시선은 더없이 화려했던 '비르투오소'(virtuoso)로서의 면모에 치우친 경향이 지나치게 강했다. 최근까지도 그에 대한 관심은 피아니스트로서의 전설적인 이미지에 집중되었고, 그가 남긴 작품들 중에서도 주로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피아노 작품들만이 각광을 받았다. 심지어 '교향시의 창시자'라는 중요한 업적도 실질적 관심보다는 예우의 차원에서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가 피아노 음악 분야에 새긴 족적은 너무도 거대하고 강렬하다. 그렇기에 그를 향한 조명이 우선 '피아노 음악가(연주가, 작곡가, 교육자)'라는 면에 쏠리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리스트라는 인물과 그 음악이 지닌 의미와 가치의 다른 쪽 절반을 놓치는 격이다. 리스트는 피아노 음악 이외의 분야에서도 폭넓고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특히 관현악 장르에서는 바그너가 음악극 장르에서 이룬 것에 견줄 만한 성과를 쌓아 올렸다. 그 중에서도 <파우스트 교향곡>은 흔히 '리스트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거론되는 걸작이다.
<파우스트 교향곡>은 제목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교향곡'과는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다. 차라리 이 작품은 리스트 자신이 창안했던 '교향시'의 방법론을 교향곡의 구조와 융화시키려 했던 새로운 시도의 산물로 봐야겠다. 리스트는 여기서 교향곡의 고전적 수법인 발전과 확대라는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베를리오즈처럼 일정한 줄거리에 따라 사건을 묘사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사실상 이 작품은 서로 연관된 주제와 내용을 가진 3개의 교향시를 한 데 묶어놓은 '연작 교향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리스트는 세 악장에 각각 '파우스트' '그레트헨'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각 악장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세 인물을 대상으로 한 '음악적 스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리스트는 이 작품에 '세 인물의 초상'이라는 부제를 달았던 것이다.
제1악장 : 파우스트(Faust)
성공한 노학자이자 마법사인 파우스트 박사. 그는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을 섭렵했지만, 여전히 진리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그는 자괴감에 빠진 나머지 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하기 위해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를 하기에 이른다. 그 후 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힘을 빌려 시공을 초월한 여행을 다니고, 젊음을 되찾아 아름다운 여인들과 사랑을 나눈다. 이 악장은 그런 파우스트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리스트는 파우스트의 이미지를 대략 5개의 주제로 나타냈는데, 그 주제들에는 파우스트의 성격뿐 아니라 그의 탐구 대상인 이 세상의 모습도 투영되어 있다.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
먼저 곡이 시작되면 느린 템포로 음산하게 흘러나오는 제1주제는 인간 앞에 영원한 수수께끼로 존재하는 이 세상의 비밀을 나타낸다. 비올라와 첼로로 연주되는 이 선율은 한 옥타브 내의 12개 음표를 모두 사용한 것으로서, 쇤베르크보다 70년이나 앞선 리스트의 혁신적인 발상을 보여준다. 이어서 오보에와 클라리넷에 의해서 여리게 제시되는 제2주제는 일명 '동경의 주제'로 불린다. 이것은 마치 파우스트의 가슴 속 보다 깊은 곳을 슬며시 들추어 보이는 듯하다. 이후 템포가 빨라지면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인간의 정열을 나타낸 듯한 충동적인 음악이 강렬하게 펼쳐진 다음 다시 템포가 느려진다. 제3주제는 '알레그로 아지타토 에드 아파쇼나토'(빠르게, 흥분되고 정열적으로)라는 지시어에 따라 바이올린 파트로 연주되는데, 통한의 탄식처럼 등장해서 다시금 정열적으로 치달아가는 이 복잡다단한 선율은 파우스트의 끝없는 욕망과 야망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이 선율이 고조에 이른 후 따라붙는 제4주제는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소리 높여 연주하는데, 이것은 마치 파우스트의 욕망과 도전에 따르는 희열과 고뇌를 가리키는 듯하다.
다시 템포가 느려지면 바이올린의 섬세한 움직임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운데 클라리넷이 제1주제를 암시하고, 이어서 제2주제를 발전적으로 변형시킨 선율(편의상 '주제 2a'로 표시한다)이 클라리넷, 호른, 비올라, 오보에, 플루트 등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흘러나온다.
이후 음악은 다시금 질주하며 또 한 번의 격렬한 고조에 도달했다가, 다시금 템포의 변화를 거쳐 제5주제에 도달한다. 호른과 트럼펫의 장쾌한 팡파르에 실린 이 선율은 파우스트의 잠정적 성취 혹은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는 듯하다.
이상으로 느슨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첫 악장에 등장하는 5개의 주제를 살펴보았다(여기까지 연주시간 대략 10분 전후). 이 주제들은 이후 발전부와 재현부를 거치는 동안 복잡하게 뒤얽히면서 파우스트의 이미지를 심화시켜 간다. 그 험난한 여정의 지향점은 역시 제5주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작 악장의 마무리는 제2주제가 장식한다. 그리고 이 제2주제의 변용인 '주제 2a'는 마지막 악장의 합창 엔딩에서 다시 한 번 변용되어 나타난다(주제 2b).
이 악장은 절대 호락호락한 악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 흐름을 파악하고 그 요소들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난해한 음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루어지는 주제가 많은 만큼 전 곡 가운데 가장 장대하고 복잡해서 연주시간도 짧게는 25분에서 길게는 30분까지 걸린다. 그런데 이러한 복잡성과 난해함은 리스트가 이 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느꼈을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고군분투의 과정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울러 그가 여기서 그리고 있는 '파우스트'의 모습을 다름 아닌 리스트 자신의 모습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기 위해서 피아노 연주와 그 음악의 모든 것을 탐구하고 섭렵했으며, 나아가 '교향시'를 창안할 정도로 다른 장르에서도 음악가로서 파우스트적인 관심과 노력을 경주했던 '미래음악'의 개척자! 물론 그 모습은 19세기 예술가들의 한 전형이기도 했다.
제2악장 : 그레트헨(Gretchen)
간주곡 풍의 느린 악장으로, 앞선 악장에 비해 한결 듣기 편하고 아름답다. 이 악장의 주인공은 파우스트의 연인인 그레트헨이다. 그녀는 멋진 청년으로 변신한 파우스트에게 반해 사랑을 나누고 그의 아이까지 가졌지만, 그를 만나기 위해서 지은 죄 때문에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결국 그녀의 진정한 사랑 덕분에 구원을 받게 된다.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만남.
전체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제1부에서는 순결한 처녀 그레트헨의 모습이 그려진다. 처음에 클라리넷의 도움을 받은 플루트가 청초한 분위기를 자아내면, 가녀린 오보에 선율이 그녀의 모습을 수줍게 드러낸다. 비올라의 부드러운 장식음들이 그녀의 순수한 이미지를 한층 부각시킨다. 계속해서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이 머뭇거리며 대화를 이어가는 부분은 다분히 상투적이지만 사랑스러운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가 꽃잎을 하나씩 뜯으며 이렇게 되뇌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를 사랑해, 사랑하지 않아, ..."
제2부는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사랑의 2중창'이다. 제1악장의 제3주제가 등장하여 그레트헨의 선율과 어우러지며 감미로운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그것이 뜨거운 열정으로 번져가는 낭만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반면에 제3부는 파우스트에게 버림받은 그레트헨의 가련한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감미롭고 애틋한 악장의 마무리는 제1악장의 '주제 2a'가 장식한다.
제3악장 :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eles) - 종결 합창(Schlusschor)
'부정하는 정령'인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그린 악장으로, 성격상 스케르초 악장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주제들은 제1악장에 나왔던 주제들을 기묘하고 익살맞게 변형시킨 것들이다. 즉, 여기에 그려진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습은 곧 그의 술수에 휘말려 타락해버린 파우스트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혹은 악마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보다는 인간을 조종하고 조롱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한다고 할까. 이 악장은 그런 악마의 음흉한 표정과 신랄한 풍자, 난잡한 춤사위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 악마적인 곡을 쓰는 과정에서 리스트는 극단적인 반음계를 사용하여 음악을 무조성 직전까지 밀어붙였다. 아울러 메피스토펠레스 역시 리스트의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의 '악마적인' 피아노곡들이나 '사제복을 입은 메피스토'라는 그의 별명을 떠올려 보라. 이런 이유로 이 악장은 전 곡 가운데 가장 주목받아 왔다.
한편 이 악장은 원래 앞선 악장에 나왔던 그레트헨의 주제가 다시 나타나 궁극적으로 메피스토펠레스를 물리치고 나면, 합창 없이 10마디의 코다로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리스트는 나중에 계획을 변경하여 합창과 테너 독창이 노래하는 경건한 엔딩을 덧붙였는데, 그 가사는 괴테의 <파우스트> 대단원을 장식하는 '신비의 합창' 대목에서 가져왔다. 그 마지막 구절에서 앞서 언급한 '주제 2b'가 반복해서 새겨지는 부분은 '끊임없이 열망하고 노력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파우스트의 메시지를 상기시켜준다.
Alles Vergangliche ist nur ein Gleichnis;
Das Unzulangliche, hier wird's Ereignis;
Das Unbeschreibliche, hier ist's getan;
Das Ewig-Weibliche zieht uns hinan. (주제 2b)
일체의 무상한 것은 한낱 비유일 따름이다.
완전치 못한 일들도, 여기서는 실제 사건이 된다.
형언할 수 없는 것들도, 여기에서는 이루어진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도다.
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6443&category_type=se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