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동 계곡에서
계획도 없이 떠났다가 마침내 이 곳까지 오게 되었어요.
(제 개인적으론 가을과 겨울 사이에 가장 큰 감동을 주었던 곳이죠.)
무척이나 가물었던 탓인지 이 깊은 계곡에 흘러가는 수량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휴가철답게
구천동 입구로 향하는 곳곳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야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일곱시가 넘어 도착한 이 곳에서는 도저히 방을 구할 수 없겠다 싶어
구천동에서 거창 쪽으로 차를 몰아가다 보니 아주 한적한 길가로 식당이 하나 보였고
민박을 겸한다는 간판이 보여서 혹시나 싶어 차를 세우고 물었더니
비록 허름하지만 묵을 순 있을거라며 오늘 하루 쉬어 갈 이층 방을 보여줍니다.
말 그대로 옛날 여인숙 분위기가 잔뜩 묻어나는 낡은 침대 하나 달랑 놓이고
빨간 꽃무늬 벽지를 발라놓은,
잠금장치마저 고장나 버린 문은 힘껏 밀어야 겨우 열리는 그런 방 언제쯤 칠한 니스칠인지 나무 창 밖으로
남덕유산로 이어지는 능선이 고스란히 보였고
바로 아래로는 주인장께서 가꾸고 계신 텃밭에 심어놓아 자라난 녀석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
어떻게 쓰러졌는지도 모르게 잠든 사이
"꼬꼬댁" 소리가 어지간히 귀찮게 들려왔어요.
이미 이틀 동안 운전한 거리보다는 그 동안 쌓였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밀여왔던 까닭이었을까요.
잠 좀 더 잤으면 좋겠어서 꼬꼬댁 소리를 막아버리려고 저만치 차버린 이불을 다시 끌어다가
베갯속으로 얼굴을 파 묻어버렸습니다.
비몽사몽간에도 들려오는 지난 저녁 제 녀석 몇 번째 마누라였는지는 모르지만
이 깊은 산에서 직접 채취해 오신 약초뿌리들, 말려놓은 가지들과 함께 끓여져
우리의 식사가 되어버린 암탉을 위해서 울었는지도 모르는 수탉이 그 아래에서
긴 목과 노란 다리를 깡총대며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 녀석이 울어대는 소리에 언제부터 깨어있었는지
아내는 도심속에서 잊고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잔뜩 찌푸린 이 깊은 계곡의 하늘에서 곧 쏟아질 비를 얼마든지 맞아보겠다고 마음먹고
구천동 계곡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