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아직은..
낚시에 대한 열정이 예전 같지가 않다. 오늘 아침의 기온이 영상으로 돌아 섰지만 왠지 집을 나서고 싶지 않다. 저수지의 얼음이야 아직 녹으려면 멀었으랴만 강의 상황은 분명히 달라져 있을 거다. 처음 낚시에 빠져들 때만해도 눈보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지 않는 곳을 찾아 겨우 경운기가 들어갈 만한 곳에 차를 대고 진흙위에 쌓인 눈을 헤치고 잔뜩 기대를 품고 들어가 보면 먼 곳에서 바라볼 때와는 달리 고기가 머물고 있지 않는 곳이라는 걸 확인하고 발목까지만 덮는 전투화바닥에 잔뜩 묻은 흙을 매달고 녀석들을 찾아 다른 곳으로 향하곤 했었지만 아무래도 올 해 겨울은 너무나 추웠다는 좋은 핑계거리 앞에 마음껏 게으름을 피울 수가 있었다.
잠시 쪽잠에 빠져들었는데 자주 찾던 두 곳의 장면이 떠올랐다. 충주댐에서 방류한 물이 괴산에서 흘러든 달천강과 만나 조정지 댐까지 흘러가는 탄금호를 가로지르는 탄금대교아래에서 달천쪽으로 버드나무가 예닐곱 수 서 있는 곳까지 이어진 포인트다. 곳곳에 물에 잠긴 나무들이 녀석들의 훌륭한 은신처로 얼음만 얼지 않는다면 손맛을 전해 줄 가능성이 아주 높은 곳이다. 평균 사이즈 30-35정도의 배스들과 아주 가끔씩 50에 이르는 녀석들도 볼 수 있는 곳으로 한 겨울의 무료한 시간에 지친 중부지방 배서들이 본격 시즌이 열리기 전 처음 찾아보는 곳이다.
여주에서 원주로 이어진 42번 국도를 달리다가 강천이란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는 강천면 굴암리 샛강 포인트. 얼마 전 4대강 사업인가를 한다고 현재 이 곳엔 거대한 강천보가 설치되어 있다. 이 보가 설치되기 전에 자주 찾곤 했었지만 작년 이맘 때 강을 준설한다고 죄다 파 헤쳐 놓은 흉물스런 모습에 질려 단 한번도 찾지 않은 곳이다. 여름에 홍수가 지면 남한강과 연결되었다가 물이 빠지면 늪지로 남게 되는 그다지 작지도 크지도 않은 자연 저수지인 셈인데, 장마 때의 거센 강물을 피해 들어온 커다란 고기들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게 되어 나름대로의 생태계를 형성해 살아가며 알만한 낚시꾼들에게 강한 유혹을 던지는 곳. 지금 이 곳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자뭇 궁금하다. 마을 입구에 있는 노인회관 앞에 주차를 하고 대충 장비를 챙겨 강가로 일궈놓은 채소밭을 조심스럽게 지나고 강 왼쪽으로 이어진 산길을 조금은 숨이 가쁠 정도로 걸어 들어가면 흐르는 강물에 씻겨진 산이 절벽을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녀석들이 은신하고 있는 곳이다. 아마 햇빛에 조금이라도 노출되어 빨리 데워진 바위들이 수온 또한 올리고, 보이지 않는 강 속으로 녀석들의 몸을 숨길 수 있는 스트럭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쪽잠에서 깨고 점심식사를 마쳤다.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와 갈등하기 시작한다. 지금 출발하면 두 시 반경이면 도착할 거고 낚시시간은 적어도 두 시간정도, 큰 기대 없이 필드나 돌아 볼 겸 가벼운 운동 삼아 갈까 말까 고민이다. 머리는 자꾸 좀 움직여라 라고 명령을 내리지만 마음에 불이 붙지를 않는다. 어차피 잘 해야 한 마리 고기를 보자고 거기까지 기름태워가며 갈 필요가 있을까? 장비 챙기고 내복을 껴 입어야 하고 이 추운 겨울날 미친놈 아니냔 다소 의심스런 시선을 의식하며 여기저기 발품 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발바닥에 묻힌 흙덩이 덕에 겨우 세차한 차 안을 청소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을.
집 앞에 장이서서 딸래미 좋아하는 닭강정을 튀기고 있는데 그냥 참고 다녀올 경비 아껴서 닭강정이나 사다가 소주나 한 병 비우고 더 따스한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게 현명하단 것을 알지만 그래도 왠지 오늘 가보면 반갑게 수면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녀석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조금만 기다려라. 고기를 낚는 것도 언제나 때가 있는 법이니라. 아직은 겨울이다.